- 고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한 상도동계 핵심 인사였습니다.
-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뒤 문민정부에서 집권당 사무총장과 내무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 1997년 뇌졸중으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뒤 오랫동안 투병했습니다.
무슨 일인가
최형우 전 장관의 별세 소식은 안경률 전 국회의원 등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고인은 1997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오랜 기간 투병해 왔습니다. 유족으로는 부인 원영일씨와 두 아들, 두 딸이 있습니다.
장례는 고인의 의정 활동과 민주화운동 이력에 관련된 세 단체가 함께 맡습니다. 유족 측은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이 장례위원장으로 참여한다고 전했습니다. 권 이사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 이사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치 활동을 함께한 인사입니다.
고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 정치인들을 가리키는 상도동계의 핵심 인사였습니다. 김동영 전 정무제1장관과 함께 김 전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두 사람을 묶어 '좌동영 우형우'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과 민주화운동을 함께했으며, 문민정부 출범 뒤에는 민주자유당 사무총장과 내무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그의 정치 이력에는 야당 활동과 집권당 활동이 모두 포함돼 있습니다. 신민당 부총재와 민주당 수석부총재·원내총무 등을 지냈고, 1990년 3당 합당으로 출범한 민주자유당에 합류한 뒤 정무제1장관을 맡았습니다. 김 전 대통령 취임 뒤에는 민주자유당 사무총장과 내무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고인은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도 당선돼 국회의원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권의 대선주자로 거론됐지만, 같은 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후의 긴 투병에 앞서 민주화운동과 국회, 정당, 정부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습니다.
배경과 경위
고인은 1935년 울산에서 태어나 부산공고와 동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60년 4·19혁명 때 동국대 학생 대표로 활동했고, 1968년에는 '4·19 6·3범청년회' 사무총장을 맡았습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학생운동과 청년단체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국회에 처음 들어간 것은 1971년 제8대 총선이었습니다. 신민당 후보로 울산·울주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된 뒤 제9·10·13·14·15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여섯 차례 당선됐지만, 1980년에는 신군부 집권 과정에서 의원직을 잃었습니다.
군사정권 시기에는 국군보안사령부에 여러 차례 연행돼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후 1981년 김 전 대통령이 만든 민주산악회에서 활동했고, 1985년에는 민주화추진협의회 간사장을 맡았습니다. 상도동계에서의 활동은 선거와 당직뿐 아니라 군사정권에 맞선 민주화운동으로도 이어졌습니다.
확인된 사실과 엇갈리는 주장
여러 매체에서 공통으로 확인되는 사실
-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은 10월 24일 향년 91세로 별세했습니다.
- 고인은 제8·9·10·13·14·15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 장례는 대한민국헌정회·4·19혁명공로자회·민주화추진협의회가 공동 주관합니다.
앞으로 확인할 것
- 발인은 10월 27일로 안내됐으며, 장지는 국립4·19민주묘지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빈소는 어디에 마련됐습니까?+
서울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됐습니다.
내용을 대조한 기사
진보 성향 매체와 보수 성향 매체를 가리지 않고 아래 기사들을 서로 대조해서, 양쪽에서 공통으로 확인되는 내용만 정리했습니다. 기사 본문은 저장하거나 옮겨 싣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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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4일 집계 기준으로 작성한 리포트이며, 이후의 보도는 반영하지 않습니다. 요약과 분석은 투자 권유, 법률 판단, 가격 전망이 아닙니다.